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크림 칸국 (문단 편집) === 노예 무역 === 크림 칸국은 노예 무역과 약탈이 활발히 이루어진 나라였다.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유럽 러시아]]가 크림 칸국의 주요 약탈지가 되었고, 크림 칸국은 그 중에서도 주민들을 납치하여 노예로 파는 데 혈안이 되었다. [[오스만 제국]]과 [[이탈리아 반도]]를 비롯한 지중해 각지에 공급되는 백인 노예의 상당수는 크림 칸국이 강제로 잡아온 러시아나 [[폴란드-리투아니아]] 혹은 [[체르케스]] 출신 노예였다. 오스만의 도나우 번국들도 크림 칸국의 주요 약탈 대상이었다. >그들은 포로 노예를 크림의 모든 도시에서 매매하고 있으며 카파에서는 노예매매의 규모가 가장 크다. 노예로 팔리는 불행한 사람들의 무리 전체를 시장으로부터 곧바로 배에 타라고 몰어넣는 일도 벌어진다. 이 도시가 편리한 바닷가 부두에 바로 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카파는 도시가 아니라 우리의 피를 게걸스레 먹어치우는 탐욕스럽고 혐오스러운 심연이라고 부를 수 있다. >---- >16세기 한 [[리투아니아인]] 여행자의 기록 16, 17세기 크림 칸국의 약탈은 러시아, 체르케스 뿐만이 아니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영토의 동부에서도[* 현재의 [[우크라이나]]에 해당하는 곳으로 우크라이나인은 이 크림 칸국 기마부대의 직접적 피해자이다.] '''무척''' 심각했는데, 이들의 노예 사냥이 하도 기승을 부려서 지주들까지(...) 전부 노예로 끌려다가시피 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한동안 [[드니프로 강|드네프르 강]] 일대가 사람이 살지 않는 공백지가 되다시피 했다. [[카자크]]들은 이 공백지를 접수한 후에 러시아와 폴란드-리투아니아에서 온 도망 농노들을 받아들인 후 세력을 키우게 되었다. 당시 [[러시아 제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의 [[농노제]]가 대단히 악랄했음에도 불구하고 농노들의 반란이나 소요가 적었던 이유가 '''노예로 납치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농노로 사는 게 나을 거 같아서....'''였으니 할 말 다했다. 주로 상품 가치가 높은 처녀들이 납치의 주 타겟이 되었고, 어린아이들은 어차피 끌고 가 봤자 병들어 죽기 쉽다는 이유로 납치하지 않고 바로 말발굽으로 밟아죽였다. [[폴란드-리투아니아]]에서만 해도 1474년부터 1694년까지 '''매년 평균 2만명''' 가까이가 크림 타타르 전사들에게 납치되거나 살해당했다니 당시 차라리 농노로 살기를 택했던 사람들이 이해가 될 정도이다. 또한 국가적인 차원에서 인구가 지속적으로 유출되는 모양새이다보니 러시아 제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 입장에서는 국력 성장을 막는 주요 요인이기도 했다. 이들은 기독교 국가만 약탈한 것은 아니고 같은 무슬림인 [[체르케스인]]들도 심각한 수준으로 약탈했는데, 체르케스인들은 15세기 이후 부족 대다수가 이슬람으로 개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에서는 무슬림이 다른 무슬림을 노예화하는 것을 금지한다. 이런 규정은 채무자가 노예가 되는 상황은 막을 수 있었으나 크림 칸국같은 노예 매매가 주 산업인 국가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체르케스인 군인 노예들이 몸값이 비싸고 여성들이 아름답다는 이유로 침략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체르케스인 노예들은 주로 이집트의 맘루크로 팔려가거나 아니면 오스만 제국 황실이나 유력자들의 하렘으로 팔려갔기 때문. 노예 납치 산업이 얼마나 흥했는지 카파의 부유한 타타르 유력자들은 가난한 크림 타타르족에게 말과 무기를 빌려주고, 납치한 노예를 이자로 납부하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볼 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인간적인 사업까지 번성했다.[* 원래 이슬람에서는 이자가 불법이지만 농사를 지을 때 소나 말을 빌려주면 수확량의 20%를 가져가는 페르시아 관습법을 적용하여 합법화했다고 한다.] 심지어 오스만에 충성하는 번국, 봉신국들과 같은 무슬림인 체르케스인들까지 마구잡이로 납치하고 약탈하고 다녔다. 이들의 등쌀 때문에 러시아인들 및 폴란드-리투아니아인들은 방비를 위해 방책을 세우는 등 엄청난 고생[* 16세기 초를 예로 들면 흑해도 아니고 발트 해 연안의 빌뉴스에서 성벽을 지속적으로 보강해야 했을 정도였다.]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럼에도 불구하고 3세기 동안 무려 '''수백만 명'''[* 1500~1700년 사이 크림 칸국이 오스만에 수출한 러시아와 폴란드인 노예는 '''2백만'''이 넘는다.]이 노예로 잡혀 갔다. 1571년, 크림 칸국은 [[루스 차르국]]의 수도 [[모스크바]]를 대대적으로 기습하여 [[크렘린]] 요새를 제외한 도시의 모든 건물을 불태우고 '''약 10만 명'''의 모스크바 시민들을 노예로 납치하기도 했다.[* 이때의 습격으로 인한 사상자는 6만에서 20만에 달한다.] [[러시아인]]이나 [[우크라이나인]] 입장에서 보면 이가 갈릴 만도 하다. 사실 오늘날의 [[크림 타타르]]인은 납치된 러시아, 우크라이나인 여성들과 타타르족 남성들의 자손들이기도 하다.[* 정작 [[토크타미쉬]]와 함께 리투아니아 대공국에 들어온 [[립카 타타르]]인들은 근대까지도 현지인들과 별로 혼혈이 되지 않았다. 다만 립카 타타르인 중에서도 폴란드에 살던 이들은 현지인들과의 혼혈이 잦아진 것 때문에 리투아니아 및 벨라루스의 립카 타타르인들에 비해 완전한 백인에 가까운 외모다.] 체르케스인들의 경우 같은 무슬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숱한 약탈과 납치를 당했지만 [[러시아 제국]]에 정복되어 탄압받은 동병상련[* 물론 크림 타타르 같은 경우에는 화를 자초한 경우이지만...]의 역사를 공유한 이유로 과거사는 묻혀가는 분위기이다. 다만 체르케스인들은 러시아 지식인들이 '우리가 침략해서 잘못했다'라는 식으로 인정하거나 아니면 문학 작품에서 고결하고 순수한 사람들로 묘사되는데 비해, 크림 타타르인한테는 그런 거 없다... 비교하자면 [[카잔(러시아)|카잔]]과 [[아스트라한]]에 살던 친척뻘인 [[볼가 타타르]]인들도 크림 타타르처럼 러시아인을 잡아다 노예로 팔아버린 전과가 있었고 격렬한 저항 끝에 [[이반 뇌제]]가 잔인하게 정복했으며 러시아어 강요와 강제 개종 등을 통해 강압적으로 러시아의 일부로 동화를 시도했으나 차차 [[러시아 제국]] 내에서 새로 정복한 무슬림 민족들을 관리하는 [[중간관리자]] 민족으로서 대우도 좋아지고 어느 정도 자치권도 인정받으면서 러시아와 사이좋게 융화되었으며 이는 [[소련]]과 [[러시아|러시아 연방]] 등에서도 존중되고 있다. 당장 이들은 자치공화국인 [[타타르스탄 공화국]]도 갖고 있다. 그러나 지중해 진출을 가로막는 숙적의 제1번국이자 수세기 동안 자국민을 잡아다 노예로 팔아치우면서 변경을 위협하던 불구대천지 원수인 크림 타타르는 그딴 거 없었다. 이는 [[크림 반도]]가 [[러시아 제국]]의 수중에 떨어지자 수많은 크림 타타르인들이 [[오스만 제국]]으로 망명 가는 계기가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